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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제 책 이야기

[Sharon의 책] 정체성 -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1)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마다 마주하는 김치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돈은 좋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학교에서는 돈만 생각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쿠루지 영감은 벌을 받다가 결국 자신을 뉘우쳤으며 ‘흥부놀부전’의 놀부는 돈 욕심을 부리다가 벌을 받았다고 가르쳐주었다.

또한 나의 부모님은 항상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셨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초라한 나의 부모가 부끄러워졌다. 난 고졸의 아버지와 국졸의 어머니가 조그만 슈퍼와 쌀가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멋진 사업을 하시거나 박사이었으면 하고 날마다 소망했다.

집안 얘기가 나오면 주눅이 들었다. 한번은 어느 선배가 부모님이 뭐 하시느냐고 물었다. 나는 ‘쌀가게’ 대신 좀 멋있게 들리라고 ‘미곡상’이라고 대답했다.

10대와 20대였던 시절 나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재미없었다. 국사 시간이나 뉴스에서 보고 듣는 조선시대의 당쟁,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과 근대 민주화 항쟁 이야기로 충분했다.

대신 영화나 뉴스에 나오는 미국이 멋져 보였다. 나는 미국 앞에서 주눅이 들어 우리나라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20대 중반 유럽의 몇 나라를 가보니 문화유적이 멋졌고 거리는 세련된 사람들로 붐볐다.

마침 대학교 4학년 때의 미국 어학연수 경험이 기반이 되어 나는 23살의 어린 나이에 기업체 출강과 국내외 기업체 임원들을 통역을 하면서 세련된 서구문화를 접하기 시작했다. 어학연수를 했던 California는 이제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리고 꽤 ‘미국화’가 되었다.

내 이국적인 용모와 과감한 옷차림, 풍부한 제스처는 쉽게 사람들 눈에 띄었고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교포라고 생각했다. 점점 서구인들이 ‘쿨’해 보였다. 우리나라가 작게만 느껴졌고 내 주변의 남자들이 한국이라는 틀 내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답답해 보였다.

내 나이 스물 세 살에 나에게는 성실하고 선하며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보석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와의 결혼을 생각했으나 ‘이대로 결혼하고 아이 낳고 누군가의 아내로 평생 사는 건가? 내 인생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려움과 거부감이 엄습해 왔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나를 가둘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는 자꾸 내 자신이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느껴졌다. 나는 보호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인생을 논하고 삶의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는 Soul mate를 만나기를 원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바를 그에게 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