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했다. 당시 나는 영어를 좋아했고 주변으로부터 영어를 잘 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고 3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외대가 동시통역 대학원으로 유명하고 영어과가 실력이 있다는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나는 별 고민 없이 통역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대학은 생각도 하지 않고 외대 영어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입학 후 통역사의 꿈은 이내 사라졌다. 입학하던 1987년도는 6.29 선언이며 이한열 열사의 죽음 등 민주화 운동으로 소란스러웠다. 입학 때부터 우리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주던 선배들은 대부분 소위 ‘운동권’이었다. 그 선배들은 반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갔고 1학년인 우리들에게 이념 써클과 학회 스터디를 권유했다.
대학 입학 전 TV 뉴스에서 접했던 ‘건대사태’며 ‘운동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나였다. 그런데 그 운동권 선배들이 들려주는 사회, 정치 그리고 반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 시각이 편협했었다. 민주화 운동으로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계속 파행으로 치달았고 많은 교수님들이 어용으로 몰렸다.
게다가 ‘영어 전공’과 ‘반미’는 묘한 관계이다. 세계의 흐름을 보며 미국으로부터 배우려 하기보다는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조용히 혼자 영어를 공부하고 서구에 대한 사회문화를 공부한다면 ‘친미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양심 있는 지식인’으로써 할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내 시각으로는 ‘반미’가 아닌 ‘승미(勝美, 미국 앞지르기)’ 또는 ‘협미(協美, 미국과 윈윈 협력)’가 해결책임을 알 수도 없었다. 전공과 운동권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몰입을 못하고 대학시절이 흘러갔다. 기성세대와 교육체제에 대한 실망은 높아졌고 반항심도 생겼다. 10대에까지는 기성세대가 한 말은 모두 믿었고 따랐는데 20대에 와서 그 이면을 보니 불신이 생겼다.
거기다가 ‘우리는 이렇게 대학 다니고 졸업한 후에는 직장 잡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기 위해 태어난 건가? 이게 인생인가?’ 하는 질문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하지 못 했다. 나는 수업일수를 간신히 채웠고 평점 B학점을 간신히 유지했다.
내 가슴에 열정이 있었고 무언가를 해야 함은 알고 있었으나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주변 사람들도 거의 나와 같은 모습으로 가슴 속에 열정은 있으나 그 열정을 어디로 분출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우리들은 술을 마시며 사회를 성토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정작 졸업할 때가 가까워오니 이제는 취업 준비로 다들 마음이 바빴다. 대학 4학년이 되어 ‘반미’를 외치는 학생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준비할 일도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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