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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제 책 이야기

[Sharon의 책] 진주의 잉태 - 아픔은 성장을 낳는다(2)

알고 보니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being), 무엇을 하고 싶은지(doing), 무엇을 가지고 싶은지(having)에 대한 비전과 꿈이 필요했었다. 지금 내가 다시 18살로 돌아간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만으로 내 꿈을 정할 일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고 잘하는 일을 찾고 싶다. 내가 미래에 되고 싶은 모습을 갖춘 행복하고 성공한 어른들을 만나 그들의 조언을 받겠다.

그랬다면 내 꿈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명확히 알고 꾸준히 나아갔을 터이다. 비전은 항해 시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과 같다. 내 삶에 폭풍우가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고 그 나침반을 따라 갈 일이었다.

20년 넘게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간절함과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고 싶다는 열망은 해답을 찾는 기간 내내 나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고 동시에 끊임없이 영어에 집착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수입이 괜찮은 통/번역사 겸 인기강사였다. 그런데 강사는 수입은 좋지만 승진이 없었다.

순전히 승진(?)하려고 대학원에 갔고 대학원 졸업 후 기업체에 들어갔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4년 5개월 후 안정된 직장을 나왔다. 재충전하겠다면서 1년간 서울을 떠났다. 결혼이며 일이며 대다수가 사는 방식대로 살지 않아 부모님의 속도 태웠다. 지금껏 많은 책과 교육 속에 빠져 살았다. 그런가하면 단순한 지식 습득 차원의 독서는 거부하겠다며 삽십대 초반 오륙년간 의도적으로 책을 멀리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자 독립을 했다. 삶의 의미를 알기 전에는 결혼도 의미가 없었기에 남자친구들과의 관계도 오래가지 않았다. 또한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나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나도 상처를 받았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없이 영어를 배우면서 한때 주체성 없이 미국을 동경하고 언행이 ‘서구화’가 됐다. 이렇듯 중학교 때부터 지난 25년 동안 삶과 영어는 무수히 나를 시험하며 내가 가진 애착의 크기 그대로의 고통을 주었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내가 한국인으로써 왜 영어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누구 못지 않은 애국자가 되었다. 3년 전 내 사무실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영어’로 이제껏 내가 꿈꿔왔던 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최근 3년의 시간 동안 나는 대학 졸업 후 15년보다 더 많은 성장을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이젠 더 이상 잘 알려진 회사 명함이 아니어서 내 사무실 명함을 건낼 때마다 ‘NCB가 뭐하는 회사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지만 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일이어서 가슴이 뛰었다.

2007년 초까지는 나를 먼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도, 사람 쓰고 사무실 유지비용으로 생전 처음으로 ‘돈 무서운지’ 알게 되었어도 감사했고 행복했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삶과 일 속에서 혼자서 울면서 절망하지 않는다. 날마다 나는 조금씩 더 성장하고 강해졌다.

2007년 들어서면서 사람의 인연과 일 진행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하여 꿈꾸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귀한 인연들을 만나며 나날이 깨어있고 여유롭고 풍요롭고 행복하다. 더 이상 하루 16시간 동안 일하지 않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았다. 가끔은 멋진 장소를 찾아가 귀한 인연들과 대화를 즐긴다.

이제야 예전의 고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나처럼 삶의 비전 없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 아파하게 되었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소명이 생겼다. 영어의 광풍 속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돕고 싶고 함께 하고 싶었다.

내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 배운 교훈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끌어안으라고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지난 20대 나의 과오와 부족함 때문에 30대에 더 열심히 살아야했고 지난 10년간 반성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 결과 내 내면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뀔 수 있었다. 나는 이제야 사람 구실을 조금 한다.

  (계속)